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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금천구 역사, 교통, 산업 서울특별시 금천구 역사 조선시대 시흥군 군내면, 동면 지역으로 삼국시대 때부터 시흥군 중심지였다. 지금의 영등포구가 금천현의 변두리였다. '금천'이란 지명도 조선 정조 19년(1795년)에 시흥현으로 명칭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한 금천현에서 따온 것이다. 1963년 서울 대확장 이전에 '시흥'이라는 지명은 지금의 '금천구'와 구로구 동부(1949년 서울 편입 이전까지), 관악구 대부분, 광명시 등 그 주변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였다. 현존하는 서울시 25개 구 중에서 역사가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1963년 서울에 편입되었고, 1980년 이래로 구로구 관할이었다. 1995년에 구로구로부터 남부순환로 이남 지역으로 독립하였다. 서울특별시에는 강북구, 광진구와 함께 가장 마지막으로 분구된 지역이다. 금천구 분.. 2024. 2. 10.
서울특별시 중랑구 역사, 지역 특징, 교통 서울특별시 중랑구 역사 용마산과 아차산에 삼국 시대의 유물, 고구려 보루, 온달이 전사했다고 전해지는 아차산성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랑구와 광진구 일대가 삼국 시대에 군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이곳에서 백제유물이 심심찮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면목동을 제외한 중랑구 전역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 망우리면이었으며 1914년에 구지면과 병합되어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이 되었다. 면목동은 망우리면이 아닌 양주목 고양주면에 속했다. 1895년 고양주면의 일부가 한성부 성저십리 두모방에 편입되었다. 1914년 두모면과 고양주면이 고양군 뚝도면으로 통합되었으며, 이 뚝도면이 1949년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서울특별시 관할이 되었다. 1963년 양주군 구리면 일부와 성동구 면목동.. 2024. 2. 10.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역사, 교통, 상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역사 자치구 명칭의 유래는 동대문(흥인지문)이다. 1943년 경성부에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종로구, 동대문구 등의 7개 구가 설치되었는데, 당시에는 동대문이 동대문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1970년대 경제개발과 서울의 팽창으로 주변 구(동대문구, 서대문구, 성동구, 성북구 등)은 면적도 넓고 인구도 급증하는 것에 비해 서울의 도심이었던 종로구와 중구는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인구가 심각한 수준으로 감소하게 된다. 1975년 서울시는 서울시내 행정구역을 일부 조정하여 도심권의 인구를 보충하게 된다. 동대문구에서는 동대문(흥인지문)이 있던 창신·숭인동 일대를 종로구로 서대문구에서는 서대문(돈의문)이 있던 교남·구기·무악 평창동 일대를 종로구에 편입함에 따라 동대문구와 서대문구의 .. 2024. 2. 7.
서울특별시 은평구 역사, 지역 특징, 교통 서울특별시 은평구 역사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연은방, 상평방 (진관동을 제외한 나머지 전역) 및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 지역(진관동)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불광천 이동지역인 녹번동, 불광동, 응암동만 성저십리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불광천 이서 지역인 수색동, 신사동, 구산동, 갈현동 등지도 성저십리로 편입되었다. 연은방, 상평방 지역은 1911년 경성부 은평면으로 통합되었으며, 1914년 고양군에 편입되어 고양군 은평면이 되었다. 이때 지금의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효자동 일대가 고양군 신도면으로 넘어갔다. 1949년 은평면이 서대문구에 편입되어 은평출장소가 되었다. 1979년 서대문구에서 분구되어 은평구가 신설되었다. 진관동의 경우 1906년 양주군 신혈면에서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고양군.. 2024.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