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금천구 역사
조선시대 시흥군 군내면, 동면 지역으로 삼국시대 때부터
시흥군 중심지였다. 지금의 영등포구가 금천현의 변두리였다.
'금천'이란 지명도 조선 정조 19년(1795년)에 시흥현으로
명칭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한 금천현에서 따온 것이다.
1963년 서울 대확장 이전에 '시흥'이라는 지명은 지금의
'금천구'와 구로구 동부(1949년 서울 편입 이전까지),
관악구 대부분, 광명시 등 그 주변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였다.
현존하는 서울시 25개 구 중에서 역사가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1963년 서울에 편입되었고, 1980년 이래로 구로구
관할이었다. 1995년에 구로구로부터 남부순환로 이남
지역으로 독립하였다. 서울특별시에는 강북구, 광진구와 함께
가장 마지막으로 분구된 지역이다.
금천구 분구를 법률적으로 따지자면, 구로구 중 남부순환로
이남 지역과 경기도 광명시의 일부 월경지를 합하여
금천구를 신설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구로구의 분구
초안은 개봉동·온수동·오류동·천왕동·고척동·궁동·항동 등
안양천 이서지역을 갑구, 독산동·시흥동을 을구, 구로동·
신도림동·가리봉동(지금의 금천구 가산동 포함)을 병구로
3등분 하는 방안이었다. 최종 분구 안에서는 금천구와
삼성구가 명칭 후보군이었는데 금천구가 압도적으로
지지받았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교통
금천구의 도로는 남북 방향으로 발달된 반면 동서
방향으로는 미약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남순환로가
계획 12년 만인 2016년 개통하면서 서초구까지 접근성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 금천구의 도시철도역 접근성은
좋지 못한데 이는 철도의 위치와 역의 개수와 관련이
있다. 가산디지털역이나 구로동의 구로디지털단지역
역사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가산동을 제외하고는
버스를 타고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은
금천구의 환승허브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을 타면 최소의
비용으로 서울-경기의 주요 지역을 남북으로 환승 없이
이동할 수 있으며,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수도권전철
2호선을 타면 서울의 상업지구와 번화가, 주요 대학가에
갈아타지 않고 닿을 수 있다.
현재는 가산디지털단지역, 독산역, 금천구청역의 세 개의
도시철도역이 있다. 서울 도심과의 버스 교통접근성이
서울시내에서 최상위에 속한다. 경부선과 경부고속선의
분기점이 금천구청역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버스의 경우 시흥5동에 범일운수 차고지가, 시흥3동에
서울교통네트워크 차고지가 있으며 가산동에는 신인운수
한남여객 차고지가 있다. 금천구의 양대 도로망인
시흥대로와 독산로 모두 버스가 상당히 많아서 버스교통은
상당히 편리한 편이다. 시흥대로의 경우 안양, 광명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버스노선이 통과하고 있다.
도로교통의 경우 간선도로인 시흥대로와 서부간선도로가
이 지역을 지나간다. 서부간선도로 끝자락에서 서해안
고속도로가 연결된다. 구의 북쪽으로 남부순환로가 걸쳐
지나가고 이를 경계로 관악구와 구로구를 맞대고 있다.
2016년 강남순환로와 평택파주고속도로(수원~광명)가
개통하면서 기아대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금천에서 강남까지 가는 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고 서해안고속도로 이후에 서남권으로 가는 길이
하나 더 생겼으며 부동산 경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가산디지털단지의 재개발로 인해 이 지역에 아파트형
공장과 IT사무실, 아웃렛이 들어서면서 이 지역의 교통량이
급증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산업
과거 성장기 제조업 중심 도시에서 이후 서비스업 중심의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한 서울 시내에서 그나마 제조업을
담당하고 있는 자치구다.
이 지역 제조업의 시작은 당시 영등포구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한국 최초의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산업보국과 경제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당시 박정희 정부는
수출산업을 장려하였고, 그 일환으로 1964년에 구로공단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부의 세제혜택과 지원에 힘입어
많은 기업들이 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가리봉동에 1967년 2 공단
1970년 3 공단을 조성하면서 구로공단은 그 규모를 키워왔다.
1960년대~70년대 초기에는 면사, 봉제, 인쇄 등의 경공업,
저부가가치 산업군에 속한 기업과 공장들이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정부 정책이 중공업 육성으로 바뀐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공업 중심의 산업단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후반에는 IT붐이 일어났다. 국민의 정부 들어 정보통신
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삼고 집중 투자하면서 벤처붐이 일고
있었는데, 이때 설립된 벤처기업들은 일차적으로 강남 테헤란로에
주로 터를 잡았다. 그러나 급속하게 오르는 임대료를 버티지 못한
벤처기업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대체지로 부상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죽어가던 구로공단 일대였다.
당시 정부의 각종 지원과 저렴한 지가를 토대로 많은 아파트형
공장들이 공급되었는데 이런 공간이 벤처기업의 필요와 딱
맞아떨어졌다. 저렴한 임대료와 편리한 교통을 무기로 삼아
IT업체들이 이 지역으로 모여들었고 이러한 아파트형 공장 건축
외에 일부 대기업공장부지도 R&D센터나 기업본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2단지 중심으로 과거 봉제/섬유 공장이 위치해 있던
곳은 현재 아웃렛으로 많이 전환되어 과거 까르뜨니트 공장은
마리오아웃렛으로, 대우어패럴 공장은 현대아웃렛 등으로
바뀌었다. 구로동에 위치한 1단지는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동에
위치한 2,3단지는 가산디지털단지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덕에 여전히 많은 공장이 금천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조업 생산액도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