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역사
삼국시대에는 온조의 형인 비류가 터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미추홀(彌鄒忽), 매소홀(買召忽)로 불리다
(미추홀구, 비류대로, 매서홀로 지명의 시초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따라 통일 신라의 9주 5 소경에 편입되어
한산주 율목군 매소홀현이 되었다. 이후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漢化) 정책에 따라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인천 이씨 가문에서 7명의 왕비를
배출하면서 경원군, 인주(원인재역이 인천이씨 묘소
에서 명칭 되었다) 그래서 SBS 드라마 '시티홀'에
나오는 인천을 모델로 한 가상의 도시 이름도 '인주시'다.
인주시의 특산물 중 하나는 밴댕이인데, 실제로
강화도의 특산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원부로
계속하여 승격되었다. 인천 이씨의 유명한 별칭이
경원이씨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인주군으로
강등되었다. 조선 태종 시절에 군현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인주가 다시 경기도 인천군(후에 인천 도호부로 승격)이
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인천(仁川)이란 기록은
찾아볼 수 있다. 루원시티가 있는 가정동 명칭이 조선
개국공신 조반의 별장이 있다고 해서 이 명칭이 되었다.
강화도 조약으로 1883년 일본이 강제로 개항시킨 후
구한말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개화의 도시
인데, 인천항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로
일본인, 청나라인, 서양인들을 비롯한 많은 국적의
외국인의 왕래가 잦았다. 현재도 인천 개항장 인근에
적산가옥(일본식 건축물), 차이나타운, 구한말 서양식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서양
문물 중 대표적인 것이 야구와 축구 같은 스포츠
종목이다. 조선을 두고 다투는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는데 청일전쟁, 러일전쟁 모두 인천에서
전투가 있었다. 6.25 전쟁 때에는 낙동강까지 밀려나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한 한국을 구해낸 인천상륙작전의
주무대였다. 수봉공원에 UN 참전 기념탑이 있다.
자유공원에 맥아더 동상이 있다. 기존 도심은 중구·동구
및 남구 용현동, 숭의동, 도화동 일대였으나, 1985년
중구 관동에 있던 시청이 남동구 구월동으로 옮겨가면서
구월동과 간석동, 관교동, 주안동이 새로운 도심으로
떠올랐다. 1989년 경기도로부터 계양면과 영종도·용유도를
편입했고, 1995년 강화군 및 옹진군, 검단을 새로 편입
하면서 확장되었다. 경기도에서 유인도 39개를 가져왔다.
경기만의 대부분이 인천의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인천광역시 명칭 유래
인천을 칭하는 단어로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미추홀( 彌鄒忽)이다. 미추홀의 홀(忽)은 고구려와
백제의 특징적인 지명어로서, 한자어 성(城)으로
쓰인다. 미추홀을 미추성으로 바꾸어 표기해도
되는데 실제로 광개토대왕릉비에 미추성(彌鄒城)
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통일신라의 9주 5 소경 제도에 따라 한산주 매소홀현이
설치되었으며, 매소홀현은 경덕왕 때 한화(漢化)
정책에 따라 이름을 고쳐 소성현이 되었다.
고려 숙종 때 숙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 이씨의
내향(內鄕)이었던 관계로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
되었다. 인종 때에는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승격되었으며, 이자겸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몰락하다시피 하였으나 공양왕
2년에 이르러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고려의 왕후를 배출한 지역
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 한 번 더 승격되었는데
이는 공양왕이 신종을 매개로 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경원부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하여 다시 인주군(仁州郡)으로 강등되었고
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의 이름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하여 현재의
인천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인천광역시 특징
조선 후기,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항구도시로 국내에서 최초인 것들이
많다.
● 짜장면:중국 산둥에서 건너온 부두 인부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이 짜장면의 시작이다.
● 쫄면:1970년대에 인천에서 처음 생겼다.
● 축구, 야구:인천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 공원:자유공원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공원으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
● 철도:경인선은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를 잇는
국내 최초의 철도이다.
● 고속도로:대한민국 최초로 착공된 고속도로는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를 잇는 경인고속도로이다.
● 호텔:대불호텔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 초등교육기관:1892년 개교한 영화학당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 성공회 교회:성공회 내동성당은 국내 최초의 성공회
교회이다.
● 감리교회:내리교회는 국내 최초의 개신교 감리회
교회이다.
● 외국인 사교 클럽:제물포 구락부는 국내 최초의
외국인 사교 클럽이다.
● 극장:애관극장은 국내 최초의 극장이다.
● 등대:팔미도 등대는 국내 최초의 등대이다.
● 이민:국내 최초의 근현대적인 이민은 101명의
한인들이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출발해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여 미국 하와이로 이민한
것이다.
● 성냥:1886년에 국내 최초의 서양식 성냥공장이
세워졌다.
● 담배:국내 최초의 담배공장인 동양연초회사가 있었다.
● 사이다:인천탄산수제조소는 국내 최초의 사이다 공장인
동시에 국내 최초의 탄산음료다.
● 해군사관학교:조선 최초로 근대식 수군 장교를 육성한
통제영학당이 이곳에 있었다.
● 기상대:국내 최초로 세워진 기상대인 인천기상대가
있다.
● 염전:천일제염 주안염전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천일
염전이다.
● 시외전화:국내 최초의 전화소인 인천전화소가
설치되었다.